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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어느 날 유치원 하원길, 로랑이가 갑자기 ‘엄마, 저 글자 뭐야?’라고 물었어요. 놀이터 간판을 가리키면서요. 그때까지 한글 공부는 특별히 생각해본 적 없었어요. (유기농 식재료 고르는 시간은 길어도 한글은 언젠가 되겠지 하고 미뤘거든요.) 근데 로랑이가 먼저 궁금해하니, 아, 이제 시작할 때가 됐나보다 싶었어요.
주변 엄마들한테 물어보니 대부분 학습지·전집·엄마표 중 하나를 택하더라고요. 저는 세 가지를 다 해봤어요. 6개월 동안요. 지금 돌이켜보면 로랑이한테 맞는 방법은 딱 한 가지였고, 나머지 둘은 우리 집엔 맞지 않았더라고요.
5살 로랑이, 한글에 관심 보이기 시작했을 때
사실 처음엔 몰랐어요.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적어도 48개월은 지나서 해야 한다’고 말하거든요. 로랑이가 그 타이밍에 딱 들어맞았나 보다 싶었어요. 간판 글자 물어보더니 며칠 뒤엔 자기 이름 쓰고 싶다고 하고, 그다음엔 애니메이션 자막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읽어보려 하고요.
아이가 준비됐다는 신호를 몸으로 보내는 거더라고요. 저는 그 신호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일단 세 가지를 다 시도해보기로 했어요. 학습지 체험도 신청하고, 한글 그림책 전집도 구경하고, 집에서 엄마표로 자음 모음 카드도 만들어보고요.
되돌아보니 아이마다 한글에 관심 보이는 시기가 달라요. 어떤 친구는 4살부터 글자를 찾고, 어떤 친구는 6살이 넘어서 시작하기도 하더라고요.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아이가 보내는 신호예요. 로랑이처럼 간판을 가리키거나, 자기 이름을 쓰고 싶어 하거나, 책 속 글자를 손으로 짚으면서 물어보기 시작하면 그때가 바로 적기인 거 같아요.
학습지 — 선생님은 좋은데 로랑이가 ‘숙제’로 느꼈어요
첫 번째로 시도한 건 방문 학습지였어요. 주변에서 ‘선생님이 와서 재미있게 놀아주니까 아이가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일주일에 한 번 30분, 선생님이 오셔서 교재로 한글 놀이를 하고 가시는 시스템이었어요.
처음 2주는 괜찮았어요. 선생님이 스티커 붙이고 노래 부르면서 가르쳐주시니까 로랑이도 웃으면서 따라했거든요. 근데 3주차부터 달라졌어요. 선생님이 가신 후에 남은 교재를 혼자 풀어야 하는데, 그걸 로랑이가 ‘숙제’로 받아들이더라고요.
‘엄마, 오늘 이거 안 해도 돼?’ 하루는 이렇게 물었어요. 그 말 듣고 마음이 좀 무거웠어요. 한글이 재미있는 놀이가 아니라 해야만 하는 과제가 돼버린 거예요. 일찍 교육을 시작하면 아이와의 관계를 해칠 수 있고, 아이는 학습에 흥미를 잃게 될 수 있다는 말이 떠올랐어요.
한 달 반 정도 하다가 중단했어요. 로랑이한테 ‘선생님 그만 오시면 어떨까?’ 물어봤더니 고개를 끄덕이더라고요. 학습지 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우리 집 속도하고는 안 맞았던 거 같아요.
돌이켜보면 학습지가 맞는 아이도 분명 있을 거예요. 매주 정해진 시간에 선생님과 만나는 루틴이 편한 아이, 교재 순서대로 따라가는 걸 좋아하는 아이라면 잘 맞을 수 있어요. 다만 로랑이처럼 자유롭게 놀면서 배우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라면, 학습지가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전집 — 로랑이가 고른 책이 아니어서 아쉬웠어요
학습지 중단하고 나서 바로 시도한 게 한글 그림책 전집이었어요. 인터넷 육아 카페에서 ‘이야기쏙 한글나라’ 후기가 좋길래 세트를 샀어요. 48권짜리 전집이었거든요.
처음엔 로랑이도 신기해했어요. 새 책이 한 박스 오니까요. 근데 문제는 그다음이었어요. 책이 단계별로 나뉘어 있어서 ‘1권부터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로랑이가 5권을 먼저 읽고 싶어 하는데, 저는 ‘아니야, 1권부터 해야지’라고 말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문득 이 생각이 들었어요. 이 책은 로랑이가 고른 게 아니잖아. 제가 검색해서, 제가 좋다고 생각한 걸 산 거잖아요. 한 엄마의 후기처럼 ‘아이의 선택이 배제되었다는 점이 미안하고 아쉬웠다’는 표현에 공감이 됐어요.
전집 책은 지금도 서재에 꽂혀 있어요. 가끔 로랑이가 골라서 읽긴 하는데, 한글 ‘학습’용으로는 별로 활용 안 했어요. 그냥 그림책 중 하나가 된 셈이에요.
전집을 고민하시는 분들께 하나 말씀드리자면, 아이와 함께 서점에 가보시는 걸 추천해요. 전집을 살 거라면 적어도 몇 권이라도 아이가 직접 펼쳐보고 ‘이거 재미있어 보여’라고 말하는 시리즈를 고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엄마 눈에 좋아 보이는 거랑 아이가 좋아하는 건 정말 다르더라고요.
자연 노출 — 로랑이가 제일 편하게 받아들인 방법
학습지도, 전집도 우리랑 안 맞으니까 마지막으로 시도한 게 자연 노출 방식이었어요. 거창한 건 아니고요, 그냥 일상에서 로랑이가 궁금해하는 글자를 그때그때 알려주는 거예요.
슈퍼 갈 때 간판 읽어주고, 그림책 읽을 때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천천히 읽어주고, 냉장고에 자석으로 자음 모음 카드 붙여놓고 로랑이가 조합해보게 두고요. 집안 곳곳에 사물 카드를 붙이거나, 간판이 보이면 아는 글자를 읽어보고 그 글자로 이야기하는 방식이었어요.
이 방법은 로랑이가 싫다는 반응을 한 번도 안 했어요. 왜냐하면 ‘공부’처럼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그냥 엄마랑 놀다가 글자 발견하면 ‘엄마, 이거 뭐야?’라고 물어보고, 제가 알려주면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 식이었어요.
6개월 지나고 보니 로랑이가 자음 모음을 거의 다 알게 됐어요. 받침 없는 단어는 혼자서도 읽고요. 속도는 학습지보다 느렸을 수 있지만, 로랑이가 한글을 ‘재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게 제일 큰 수확이었어요.
자연 노출 방식으로 하면서 제가 실제로 했던 것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적어볼게요. 욕실 거울에 물로 쓰는 보드마커로 글자 쓰기 놀이를 했어요. 목욕 시간에 로랑이가 ‘가나다’ 쓰면 제가 옆에서 ‘라마바’ 이어 쓰고, 틀린 글자는 손으로 지우고 다시 쓰고요. 장 볼 때는 로랑이한테 ‘우유 찾아볼래?’ 하면서 상품명 글자를 읽어보게 했어요. 처음엔 그림만 보고 찾았는데, 나중엔 ‘우’자 보고 우유 찾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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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한글, 막막하다면 이렇게 시작해보세요
자연 노출 방식이 좋다고 해도 막상 시작하려면 ‘뭐부터 해야 하지?’ 싶으실 수 있어요. 제가 해본 것 중에 로랑이 반응이 좋았던 것들 몇 가지 공유할게요.
첫 번째는 아이 이름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로랑이는 자기 이름 세 글자를 제일 먼저 배웠어요. 자기 물건에 이름표 붙이고, 그림 그리면 이름 쓰고, 생일 카드에 이름 쓰면서 자연스럽게 익혔어요. 내 이름이니까 관심도 많고 성취감도 크더라고요.
두 번째는 좋아하는 캐릭터 이름이나 가족 이름이에요. 로랑이가 뽀로로를 좋아하니까 ‘뽀로로’ 세 글자를 냉장고 자석으로 만들어봤어요. 그러다 ‘로’가 자기 이름에도 있다는 걸 발견하고 신기해하더라고요. 그렇게 글자 하나하나가 조합된다는 걸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나 봐요.
세 번째는 간판 읽기 놀이예요. 유치원 오가는 길에 ‘오늘은 ㄱ으로 시작하는 간판 찾아볼까?’ 이런 식으로 게임처럼 했어요. ‘곱창’, ‘고기’, ‘공원’ 찾으면서 같은 자음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모아보는 거예요. 로랑이가 먼저 찾으면 엄청 뿌듯해하더라고요.
네 번째는 그림책 반복 읽기예요.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으면 아이가 문장을 통째로 외우게 돼요. 그러면 글자를 하나씩 짚어가면서 ‘여기가 뭐였지?’ 물어보면 아이가 기억해서 맞히거든요. 그러면서 글자와 소리가 연결된다는 걸 자연스럽게 깨달아요.
로랑이가 ‘엄마, 나 이제 책 읽을 수 있어’라고 했을 때
지난주 저녁이었어요. 로랑이가 그림책 한 권을 들고 와서 혼자 읽기 시작했어요. 더듬더듬 천천히, 받침은 틀리기도 하면서요. 근데 끝까지 읽더라고요. 다 읽고 나서 ‘엄마, 나 이제 책 읽을 수 있어’라고 했어요.
그 말 듣고 뭉클했어요. 학습지 선생님한테 배워서도, 전집 교재 풀어서도 아니고, 그냥 엄마랑 놀면서 글자를 배웠는데 로랑이가 스스로 ‘나 할 수 있어’라고 느낀 거잖아요.
혹시 학습지가 효과 있는지, 전집이 필요한지 고민하시는 분 계시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이가 먼저 궁금해할 때까지 기다려보세요. 그리고 아이가 고른 방법으로 해보세요. 제 경험상 그게 제일 오래 갔어요.
자주 물어보시는 질문들 — 6개월 하면서 받은 질문 정리
주변 엄마들이나 육아 카페에서 한글 학습 얘기 나누다 보면 비슷한 질문들이 나와요. 제가 겪어본 걸 바탕으로 몇 가지 정리해볼게요.
Q. 한글 띄어쓰기나 받침은 언제부터 가르쳐야 하나요?
로랑이는 아직 받침을 완전히 익히지 못했어요. 자음 모음 조합이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받침도 따라오더라고요. 띄어쓰기는 글 쓰는 연습 시작할 때 알려줄 생각이에요. 지금은 읽기만 하니까 띄어쓰기까지는 부담 안 주고 있어요.
Q. 하루에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셨나요?
따로 시간을 정해두진 않았어요. 로랑이가 관심 보일 때 5분에서 10분 정도 함께 놀았어요. 어떤 날은 냉장고 앞에서 15분 동안 단어 만들기 하고, 어떤 날은 아예 안 하기도 했고요. 억지로 앉혀놓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Q. 한글 떼기 전에 영어 먼저 하면 안 되나요?
이건 집집마다 다를 거 같아요. 저는 로랑이가 한글에 먼저 관심 보여서 한글부터 했어요. 영어는 나중에 천천히 해도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집도 있고, 영어 먼저 하는 집도 있던데 아이 성향이랑 상황에 맞게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엄마 여유에 맞춰서 정하시면 될 거 같아요.
Q. 한글 공부 안 시켜도 학교 가면 자연스럽게 배우지 않나요?
맞아요, 학교 가면 다 배우긴 해요. 근데 로랑이가 먼저 궁금해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공부’가 아니라 ‘놀이’로 접근했어요. 억지로 가르치려고 한 게 아니라 아이가 물어볼 때 답해준 거예요. 아이가 관심 없으면 굳이 서두를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6개월 후 우리 집에 남은 한 가지
학습지 교재는 환불했고, 전집은 책장에 꽂혀 있고, 지금 우리 집에서 제일 많이 쓰는 건 냉장고에 붙은 자음 모음 카드예요. 로랑이가 밥 먹다가 가서 단어 만들어보고, 오빠(아빠)한테 ‘이거 맞아?’라고 물어보고, 틀리면 다시 조합해보고요.
한글 학습은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로랑이가 글자를 ‘내 친구’처럼 느끼는지가 더 중요한 거 같아요. 그 친구를 억지로 만들려고 하면 아이는 도망가고, 자연스럽게 만나게 두면 아이가 먼저 손 내밀더라고요.
다음에는 로랑이가 고른 그림책 시리즈로 읽기 연습 들어갈 예정이에요. 이번에도 로랑이가 골라요. 제가 정하지 않고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면, 한글 학습하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만들기’였어요. 글자를 빨리 떼는 것보다, 책 읽는 걸 즐거운 일로 느끼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로랑이가 지금도 매일 밤 ‘엄마, 책 읽어줘’ 하면서 책을 들고 오는 걸 보면, 6개월 동안 천천히 간 게 잘한 선택이었다 싶어요.
본문은 개인 경험과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제품·정책·가격 정보는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 자주 묻는 질문
❓ 5살인데 아직 한글에 관심이 없으면 늦은 건가요?
전혀 아니에요. 아이마다 관심 보이는 시기가 달라서 어떤 친구는 4살, 어떤 친구는 6살 넘어서 시작하기도 해요. 나이보다 중요한 건 아이가 글자를 가리키거나 자기 이름 쓰고 싶어 하는 등 스스로 신호를 보내는 때를 기다리는 거예요.
❓ 학습지랑 엄마표 중에 어떤 게 더 효과적인가요?
효과보다 아이 성향이 더 중요한 거 같아요. 매주 정해진 루틴을 좋아하고 교재 순서대로 따라가는 걸 편해하는 아이는 학습지가 맞을 수 있어요. 반대로 자유롭게 놀면서 배우는 걸 좋아한다면 엄마표 자연 노출 방식이 부담 없고 오래 지속할 수 있더라고요.
❓ 자연 노출 방식으로 하면 진도가 너무 느린 거 아닌가요?
속도는 학습지보다 느릴 수 있어요. 하지만 6개월 지나니까 자음 모음 거의 다 알고 받침 없는 단어는 혼자 읽더라고요. 무엇보다 아이가 한글을 ‘숙제’가 아니라 ‘재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서 나중에 글 읽기를 싫어하지 않게 됐다는 게 더 큰 수확이었어요.
❓ 한글 전집 살까 고민 중인데 꼭 필요한가요?
전집 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엄마가 좋다고 고른 것과 아이가 실제로 좋아하는 건 다르더라고요. 만약 사신다면 적어도 서점에서 아이와 함께 몇 권이라도 직접 펼쳐보고 ‘이거 재미있어 보여’라고 말하는 시리즈를 고르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